오늘은 비가와서 일 안하고 노는 날 하기로 했다. 호스트가 여권 때문에 오타와에 가게되서 다른 친구들도 살 게 있다며 갔는데 나는 안갔다. 기껏해야 노트랑 핸드크림산다는데 동네마트(차로 30분거리)에도 팔던데 굳이 왜 거기까지 가는지 모르겠지만, 간다니 뭐 잘다녀오라 했다. 처음에는 나도 가서 국립미술관에 다녀올까 싶었지만, 할 것도 많은데 욕심부리지 말고 집순이의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로 했다. 사실 지난번에 가보니 오고가는게 장난이 아니더라. 차로 편도 3시간이면 서울-전주정도 가는거 아닌가. 한국돌아가서 전주에서 살면 서울은 이제 빠이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그냥 뭐 옆 동네 가듯이 간다. 거리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차원이 다르고 그러다 보니 시간에 대한 생각도 우리와 다른 것 같다. 


그래놓고 나는 오빠와 1시간 통화 후에 12시까지 잠을 잤다. 일어나서 밥 해먹는데만 한시간 반 걸렸고, 머리감고, 내가 맨날 앉아있는 곳- 우리 밥먹는 식탁- 주위를 싹 쓸고 ‘자, 이제 앉아볼까’했더니 애들이 온다. 왜 벌써오냐. 나는 이제 시작인데. 6시간 차타고 2시간반 쇼핑했다고 한다. 잠자길 잘했다. 


비가 추적추적오니 집에 앉아 노래들으며 뭘 하기 참 좋은 날이다. 그래서 나는 널브러진 종이 쪼가리들을 정리했다. 기념이 될까 싶은 것들 혹은 중요한거 같은데 당장 읽기 귀찮았던 것들, 그때그때 생각나서 적어두고 쌓아둔 메모, 노트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컴퓨터에 옮겨놓을 수 있는 것들은 옮겨놓고, 한글로 된 것도 안읽었는데 영어로 된 건 읽겠냐고 절대 안읽을 것 같은 약관들도 버리고, 여기와서 그림 한번도 안 그린거 보니 오십장이면 충분하겠다 싶어 이면지도 다 버렸다. 공부할때 손이 심심해서 표시해 놓은 것들도 공책에서 찢어버렸다. 가난한 외노자니까 돈 관리를 꼼꼼히 하려고 모아두었던 영수증도 적당히 정리하고 버렸다. 가방이 훨씬 가벼워졌다. 지난 날 버린 것들이 지금 하나도 생각안나는걸보니까 이것도 생각 안날거 같다. 속이 다 시원하다. 버리자. 마음도 물건도 버리자.


저녁으로는 일본카레에다가 채소를 오븐에 구워먹었다. 진짜 너무 맛있다. 오븐이 가스비 혹은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고 해서 거들떠도 안봤는데, 여기서 오븐에 요리하는 매력에 푹 빠진 것 같다. 한국 가면 오븐요리를 좀 해 먹어야지.

캐나다 여권이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해 구경을 좀 했다. 듣던대로 캐나다 여권은 모든 페이지가 다르다. ‘여권만 있어도 캐나다 소개가 가능하겠다’며 우스갯소리로 얘기했는데, 정말 좋은 아이디어 같다. 영어와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캐나다는 모든 관공서, 공산품 등에 영어와 불어를 함께 표기한다. 보통은 영어 왼쪽, 상단 / 불어 오른쪽, 하단인데 여권은 달랐다. 한 번은 영어가 먼저 한 번은 불어가 먼저 나온다. 옆에서 독일 친구가 so sweet하다며 감탄한다. 내친김에 영국 여권도 구경했다. 호스트가 4중국적자다. 세상에 4중국적이라니.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너 여권컬랙터니?’하고 농담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마어마하다. 영국 여권은 신분확인페이지가 뒷장에 있는게 신기했다. 그리고! 영국여권과 캐나다여권에 차이가 있다면서 호스트가 설명해준게 있다. 자국민의 안전에 대한 텍스트에서 영국은 Require라는 단어를 쓰고, 캐나다는 Request쓴다. 영국이 강력한 외교를 하는 걸까, 캐나다가 정중한 외교를 하는 걸까. 한국도 Request를 쓴다.


식사준비를 하면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봤다. 선수들이 입고있는 옷이 커서 그런가 경기장이 작아보이고, 스피드와 힘이 엄청난 경기더라. 룰 알고보면 진짜 재밌겠다 싶으면서 화면이 작아 퍽이 안보여서 승질이 났다. 경기는 토론토와 보스턴의 대결이었는데, 호스트가 진짜 토론토 안티다. 경기 다 챙겨보면서 지라고 한다. ㅋㅋㅋ. 재밌는 분이다. 겨울스포츠로 정말 좋겠다, 캐나다 제1의 스포츠가 될만하네라고 생각하면서 네이버에 사회인 아이스하키를 검색하는 나는 또 욕심이 도졌나보다. 내가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나보다. 같이 스킨스쿠버 수업들었던 생체과 아이스하키부가 생각이 나고, 그때가 생각이 난다. 재밌었는데.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학교 알차게 잘 다녔다.

삐끗한 등으로부터 통증이 내려오나? 허리가 아프다. 안되는데. 걱정이 좀 된다. 


Posted by ㅇㅈ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