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이곳에 왔던 첫 날처럼 추웠다. 오들오들 떨면서 차 한잔 마시고(아마 이 차를 다 마실 때쯤이면 이곳을 떠날 것 같다.) 맛없는 씨리얼에 설탕 한스푼부어 우유 말아 후루룩 먹었다. 도저히 몸에 열이 안올라서 후드 하나 더 입고 밍기적대다가 5시에 일을 시작했다. 역시 오늘도 쉬는 시간 가질 틈이 없었다. 손목시계만 보면서 9시까지 몇개 해야지, 25분동안 4버켓 더 해야지, Faster, Faster, 더 빨리 나를 채찍질하며 일한지 7시간. 12시가 되었지만 날이 선선해 한시간 더 일할 모양이다. 더 이상 못참겠다 싶어서 화장실만 잠깐 다녀왔다. 집중력이란 이런것일까. 사과솎기할때는 그렇게 배고프고 그렇게 졸렸는데, 잔인한 체리피킹은 그런걸 떠올릴 여유가 없다. 그리고 45버켓. 최저임금 42버켓보다 3버켓 더 했다. 그러면 6천원쯤 더 벌었나. 겨우 이거 좀 더 벌자고 그렇게 빠득빠득 긴장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팟캐스트 들으면서, 오빠랑 수다떨면서 했던 사과솎기가 그립다. 그땐 쉬는시간도 30분 있었는데.
내 양 옆에 다른 캠프친구들이 일하고 있다. 나 때문에 말을 안하는 건지 그들은 딱히 대화가 없다. 내가 말을 하면 속도가 줄어드니까 남의 얘기나 엿들을 모양이었는데, 서로 ‘너 얼마나 했어?’ ‘더 빨리’ 말곤 말을 안한다. 덕분에 나도 그냥 내 체리만 딴다. 주구장창 체리만 딴다. 딱 5일 전까지만 해도 맛있게 훔쳐먹던 체린데 이게 돈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젠 먹기가 아깝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다. 혼자 이렇게 일을 하다보면 절반은 '얼마를 더 해야한다’며 계산하고, 절반은 '이제 뭐하고 살지?’ 고민한다.
오늘은 잠깐 외항사 승무원을 정말로 준비해볼까 생각했다. 최소한 일하는 동안은 집이랑 돈 걱정은 안하고 살 수 있을거같고, 틈틈히 배우고 싶은거 공부하고… 쩜쩜쩜… 정말 쩜쩜쩜이다. 그렇게 되면 외국에서 살아야 하는데 오빠한테 같이 살자고 했는데 어떡하지? 승무원 준비하다가 안되면 어떡하지? 영상이랑 웹프로그래밍은 어쩌지?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체리따는 속도가 안나서 생각을 하다 말았다.
또 잠깐은 좋은 멜로디가 떠올라서 흥얼 거렸는데 자꾸 흥얼 거리다보면 조금씩 바뀌어 어느새 이상한 멜로디가 되고 처음의 멜로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생각처럼.
그러다 갑자기 어제 꾼 꿈이 떠올랐다. 어제도 개꿈을 여러개 꿨다. 하나는 어느 선배가 결혼한다고 모바일청첩장을 보낸 것이었고, 하나는 박보검이 꿈에 나왔다. 깜빡 잊고 있었는데, 잠깐 신났다. 오예 박보검 꿈을 꿨네!
영상구성에 대해서 잠깐 고민했다. 나에 대한 관찰일기 형식이면 어떨까? 어색하게 셀프 인터뷰도 하고 그러면 재밌을거 같긴한데, 관찰자의 위치에서 촬영하는게 어렵다. 여러가지 고민중이다. 이 고민은 언제 멈출까 ㅋㅋㅋ
일을 마치고 간단하게 빵을 점심으로 먹고 샤워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날이 충분히 덥지 않아서 말았다. 내일 꼭 씻어야지. 하고 일기예보를 확인했더니 계속 날씨가 23,4도에서 왔다갔다 한다. 내일은 추워도 씻어야겠다.
어제 잠을 많이 자서 그런가 피곤하진 않다. 일기를 쓰던, 파일 정리를 하던 뭐라도 해야지 싶어 노트북을 켰더니 옆집 자전거 센세가 팀홀튼에 간다고 같이 가자 그래서 왔다. 밀린 블로그도 업로드 해야겠고, 파일 정리도 해야하고, 밀린 일기도 쓰고 할게 또 잔뜩이다. 조금씩 하지 뭐. 요즘 계속 인용하는 시 구절이 있다. 인생이 나물 한 줌이 안된다는 말. 마음이 욕심과 해야 할 일들로 가득차 다급하거나, 걱정과 두려움이 잔뜩일때마다 떠올린다. 뭐 그렇게 대단한 것 없을 인생, 슴슴하게 소박하게 내 몫만큼만 살다 가자고 계속해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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