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사과솎기가 어느정도 마무리됐다. 아니, 네버엔딩 애플띠닝은 좀 더 남아 있지만,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차츰 익어온 체리들이 드디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체리는 돈이 될거라고 기대하기때문에 다들 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시급으로 돈을 받는 사과와 달리 체리는 따는만큼 벌기때문에 시간내에 많이 일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팟캐스트 들으면서 슬렁슬렁 일하는게 이제 많이 익숙해졌는데 말이다. 체리따는 일은 2-3주정도로 예상하고 있으니 이 곳 텐트생활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날은 계속 더워지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오빠 말에 의하면 4일이상 계속 되고 있다. 11시쯤부터 견디기 어려운 더위가 계속 되어 지난 토요일부터는 좀 더 일찍 일어나 5시에 일을 시작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도 짧게 느껴지고 한결낫다. 

체력이 달린건지 게으른건지 일을 마치고 나면 맥주마시고 멍때리다가 씻고 체리나무 사이에 침낭을 펴고 낮잠을 한숨잔다. 오빠는 자는 시간이 아깝다는데 나는 너무 졸리다. 물론 나도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까. 이러면 또 고민에 빠진다. 알 게 뭐야 지금 필요한거 지금 하고 싶은거 하면되지 vs 잠은 죽어서 잘거 아까운 시간에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라구!

내가 지금 이렇게 일기를 쓸 수 있는건 나만의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한 팀은 옆동네에 스케이트보드 타러갔고, 한 팀은 호수에 놀러가고, 한 팀은 어디갔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호수겠지) 제일 먼저 떠났고, 지금 이곳에 나 뿐이다. 조용한 캠프에 홀로 있으니 짱좋다.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친구들이랑 얘기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한 달 전 인스타그램에 체리농장에 왔다는 생존신고를 해두었는데, 뭐 매일 적을것처럼 해놓고 벌써 한달이 지났다. 와 그렇다 <벌써 한달이 지났다. 추워디질것 같았던 이곳의 밤날씨가 이제는 견딜만 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따뜻해졌고, 텐트와 짐들에도 나름의 규칙이 생겨 정리가 된다. 어디엔 뭐가 있고, 어디엔 뭐가 있고 하는 것들이 있다. 몇시에 해가 어디 있는지, 바람이 언제 어디서 많이 부는지, 어느 요일에 수영장이 싼지, 동네 이벤트는 뭐가 있는지 훤히 안다. 그렇지만 다리 쭉뻗고 자기 힘든 텐트는 여전히 불편하고, 툭하면 퉁퉁붓고, 비가오면 그 꿉꿉함과 쌀쌀함을 견디지 못하겠고, 바람이 불면 날리는 머리카락과 먼지에 예민함이 하늘을 찌른다. 도무지 정을 붙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곳에서도 여러가지를 포기하니 살만하다. 
또 그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쌓였다. 스스로 머리를 잘랐고, 캐나다의 산에 올라 캠핑도 하고 빙하물도 마셔보고, 어릴 적 두려움을 극복하고 호수물에 점프해 튜브 없이 야외에서 수영도 했다. 하고 나니 별거 없었다. 머리는 금방 또 자라고 있고, 산에서 길 잃은 이야기를 하며 웃고, 다이빙할땐 주춤주춤 하지 말고 멀리 물속으로 완전히 풍덩해야 다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제 좀 캐나다에서 살아봤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못하는 영어가, 돈 없는게, 추운날씨가, 혹은 알 수 없는 무언가 두려워 토론토에만 있었으면 몰랐을 캐나다와 나를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있다. 

기꺼이 낯선 환경 속으로 풍덩해야 다치지 않는다.> 


Posted by ㅇㅈ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