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화로운 오늘의 골든레이크는 노동이 없었다. 노동이 정말로 없진 않았지만, 노동이 없었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8시 반도 넘은 시간에 일어나서 양치하고 9시 딱 맞춰 본관으로 넘어갔다. 어제 호스트가 아침식사를 그 곳에서 할거고, 그 전에 사진을 좀 찍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지난번과 같이 우리가 아침 식사도 같이 준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가 갔을 때 이미 식사는 준비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지난번에 호스트가 원하는 비주얼이 안 나와서 전문가를 초빙 한 것 같다ㅋㅋㅋ 홍보용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비주얼이 완전 꽝이었거든. 시즌 중에 거의 메인으로 요리를 하신다는 동네의 아주머니가 일찌감치 오셔서 쿠키도 굽고, 팬케익도 구워놓으셨더라. 거기서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촬영용 세팅뿐이었고,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사진찍기라는 일거리를 받아서 ‘아, 오늘의 밥값을 이렇게 하겠구나’하고 촬영을 시작했다.
2.
촬영을 위해 식기들을 세팅할 때, 호스트가 박물관이나 엔틱샵에나 볼 수 있을거 같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식기를 내주었다. 같이 일하는 친구 중 한 명이 ‘oh my gosh, look at this’를 연발한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갑자기 큰 생각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일상의 즐거움을 찾고 있었다. 어쩌면 일기도 그 중 하나였을거다. 삶의 의미를 고민하던 시기는 ‘의미를 찾지 못해서 죽을 거 아니면 그냥 즐겁게 사는거다’라는 결론을 남긴 채 지나갔으나, '그 매일의 일상이 어떻게 하면 즐거울까’라는 나만의 빈칸이 채워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건 많고 좋아하는 게 많아 시도한건 많았지만, 생각도 많아 이내 길을 잃기 쉬웠고 뭘해도 딱히 재미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금방 무기력해지고 밍숭맹숭 퍼질러 누워 인터넷이나 뒤적이며 살아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하루 24시간을 쪼개서 생각하는게 버릇이 되고, 내 하루 중 세끼 밥 먹는 시간이 결코 적지 않은 시간임을 인지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그렇게나 맛집에 열광하는게 이해가 되었고, 밥 먹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됐다. 기왕이면 건강하고 맛있는걸 먹으려고 했고, 좋은 사람들과 먹으려고 했다.
그리고 ‘oh my gosh’를 듣는 순간, 밥 먹는 시간이 즐거워지는 하나의 방법이 더 생겼다고 생각했다. 외식이 잦았고, 혹은 항상 같은 식기에 밥을 먹었던 한국 생활에서 식기의 역할은 그저 음식을 담는 물건이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모든 것을 내 취향에 맞춰 새로 사야했을 때, 예쁜 그릇을 두개를 사긴 했지만, 많은 선택의 순간에 나는 항상 무난하고 깔끔한 것에 손이 갔다.
예술은 우리 생활 곳곳에 있다는 걸 머리로만 알고 있었나보다. 접시 하나, 수저 한 세트, 컵 하나가 전부 다 작품인 걸 왜 모르고 있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독일친구들은 오후에 차 한잔을 마셔도 언제나 자기 취향의 무언가를 골라냈다. 반면 나는 먹을 수 있으면 되지 ‘아무거나’ 했다. 예쁜 접시에 식사를 예쁘게 담아 화려한 포크와 나이프로 먹으니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오늘은 차도 10주년 기념컵이 아니고, 진한 남색의 컵에 담아 마셨다. 여러 개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친구집 장에 켜켜이 쌓여있던 비싸고 예쁜 접시들, 그 집 아줌마는 그걸 보며 뿌듯해 했었다. 그릇이 예뻐 일본 가정식을 좋아한다고 했던 친구의 얘기, 그래! 박물관에 있는 식기들! 패션은 개인이 가장 쉽게 예술가가 되는 방법이라고 했는데...(사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보니 의식주 인간 생활의 3대 요소가 전부 예술이구나 싶다.
나는 왜 이걸 이제야 깨닫게 된건가. (아마 언젠가 이런 순간이 있었지만 까먹었을거다.) 우리 엄마도 예쁜 식기들을 보면 좋아했는데, 나도 쇼핑하는게 즐거웠었는데 말이다.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한 것을 지향하는 문화적 배경도 그 이유를 한 자리 하고 있을 것이고, 욕망만큼 살 수 없었던 경제적 한계도 한 몫 할 것이고, 이런 작은 일상을 꼼꼼하게 누릴 수 없었던 삶 또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게 속상하거나 아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소박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밋밋함과 여백을 좋아하니까 말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장인이 살아 남을 수 없는 이유 또한 이 속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코끼리 모양의 병따개를 보여주며 이게 얼마일거냐고 물어봤었다. '비싸야 만원? 근데 왜 병따개를 만원이나 주고 사야하는지 모르겠다'는 나와 학우들의 반응에 교수님은 너희는 이것의 '가치를 볼 줄 모른다'고 했다. 그때는 괜히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건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다라고 생각해버렸다. 맞다. 합리적인 소비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병따개를 그저 병따개로서만 생각한다면. 그것의 가치가 만 원 이상인 이유는 병따개인 동시에 작품이기 때문이다. 병따개의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병따개처럼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위해 작가는 오랜시간 생각 했을 것이고,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또 오랜 시간 들였을 것이다. 일상의 물건들에게 예술의 감수성을 담고자 한 작가의 철학, 그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건 분명 만 원 이상의 가치를 할 것이다.
그러나 빠른 경제 성장 속에서 일상의 속도를 잃어버린 우리에겐 그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사회 구조 속에서 여유를 잃어버린 우리에겐 예술은 말 그대로 배부른 자들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더더욱 나의 일상 속 예술성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쓰다보니 어디로 샌 것 같다.
3.
사진 찍고 편집하는데 즐거웠다. 찍을 무언가가 ‘나 좀 찍어주십죠’하고 놓여있고, 자유롭게 잘 찍어달라고 하니 셔터를 누르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누가 잘 찍나 비교되지도 않고(아마 다른 사람들이 사진찍는 걸 좋아했다면 오늘 이렇게까지 행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저 내 눈에만 의지했던 그 순간 모든 것이 즐거웠다. 빛이 구름에 가리워 아쉬워 하는 마음도 즐거웠고, 뒤에서 들려오는 ’she is professional’이란 말이 조롱같지도 않았고 설령 조롱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명이 이렇게 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찍고 싶은데 각도가 안나오네 다른 렌즈로는 가능할까 욕심부리고 궁금해 하는 마음도 즐거웠다. 결과물을 보여줄 때 호스트가 ‘good, very good’ 하면 밥 값 했구나 싶어서 만족스러웠다. 편집까지 총 5시간, 36장의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나는 분명 사진 찍고 편집하는 게 즐겁다. 그러나 아직 평가는 두렵다. 남의 취향을 존중하는 연습을 하면 그게 극복될까.
4.
할 일이 딱히 없어 시간이 많으면 지난날을 충분히 정리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크나큰 오산이다. 할 일이 없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쓸 것도 많아져 자꾸자꾸 쓰다보면 하루가 또 끝난다. 오늘의 일기는 여기서 줄여야겠다. 벌써 4시간째 쓰고있다. 밀린 일기도 써야 하는데. 밥도 먹고 스트레칭도 하고 싶고 씻어야 하는데. 아휴, 기차티켓도 미리 사야하는데 참, 텍스리펀 신청 잘 됐나 그것도 확인해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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