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Snowstorm이 여전하다. 오늘도 바깥에서 하는 일은 하지 못하고, 본관으로 가서 빵을 만들었다. 인생 처음으로 머핀을 만들어봤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필요한 재료들을 한 번에 넣고 구워내면 끝이다. 보니까 쿠키 만들기도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한국가서 꼭 동생이랑 쿠키랑 머핀을 만들어봐야겠다. 전에 만들어보고 싶다고 오븐 켜달라고 했었는데 귀찮아서 안된다고 하고 말았었다. 무슨데이라고 쿠키를 구워온 선배가 ‘쿠키는 만들기 쉬워’라고 했을 때, 같이 살던 친구가 ‘머핀은 쉬워’ 했을 때, 하정님의 책 속에서 베이킹을 보았을 때, 친구가 베이킹 수업을 들었을 때, 왜 나는 단 한번도 레시피 한 번 찾아볼 생각은 안하고 그들이 가진 능력을 부러워만 했을까. 나는 이런데 관심없다고 단정지었을까. 요리만큼이나 재밌는 취미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 때 나는 왜 주저했던 것일까.
2.
그리고 나의 당근머핀은 사실상 실패였다. 원래 당근-건포도머핀인데, 레시피에 건포도가 들어가지 않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호스트의 엄마, 그러니까 이 곳의 주인 쯤 되시는, 분이 내 당근머핀을 맛 보고는 ‘글루텐프리니?’, ‘설탕을 안 넣었니?’ 하고 물어보더니, ‘아무래도 이건 뭐가 빠진것 같다’고 할 때 얼굴이 화끈했다. 결론은 레시피의 문제였다. 호스트가 많은 레시피들이 뒤섞여 있는데, 그 중에 뭐가 괜찮은건지 확인이 필요했다고 얘기했다. 내 잘못이 아니며, 내 인생의 첫번째 머핀이었는데 나는 왜 그렇게 부끄러웠던 걸까.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3.
같이 일하는 친구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보았다. 그 중에 내 눈 길을 끌었던 포스팅은 영국 작가 닐 게이먼의 문장이었다. 누구도 한 적 없는 내 인생을 바꿀만한 실수를 하라했다. 주저하지 말고, 멈추지 말라고 했다. 오랜만에 들어간 계정의 블로그 이웃은 토론토에서 그녀가 지내온 날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두었다. 꽃집에서 일했다는 얘기를 보니 부러워졌다. ‘나도 해볼껄’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참 겁이 많았다. 실수하기를 두려워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혹시나 문제가 생기거나 상황이 어려워지는게 싫어 캐나다 현지정보 대신 한인카페에서 찾은 한인 룸렌트를 살았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전에 급한 마음에 지인이 알려준 곳에서 일을 시작했고, 토론토 생활이 싫다 싫다하면서도 꾸역꾸역 6개월을 그렇게 살았다. 주변에서 그렇게나 집을 바꾸거나 일을 바꾸라고 조언했는데, 이미 너무 지쳤다는 핑계로 나는 더 도전해보지 않았다. 이 곳에 경험하러 왔다는 말이 무색하게 나는 한국에서의 삶과 생각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해보고 싶은 일 대신에 해왔던 일을 찾아 했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단 한번이라도 스타벅스에 지원했었으면, 단 한번이라도 스튜디오에 지원했었으면 어땠을까.
4.
왜 그랬을까. 더 이상 배우고 싶지 않았고, 아이러니 하게도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것을 하는게 지겨웠다. 아마 나는 이제 늙어가는가보다. 더 이상 청춘이 아닌 것 같다.
5.
캐나다에 와 있는동안 정말 많은 지인들이 결혼한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도 미안한데, 축의금이 버거운 내 사정이 괴로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축하를 해주자는 마음으로 웨딩사진을 보내주면 그래픽 작업을 해주겠다고 했다. 내 나름대로 프로젝트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몇 일 전에 사진 보내달라고 다시 한 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없길래 다들 원하지 않나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 접었고 그냥 뭐 '그래 나만 좋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한 선배로부터 사진보냈다는 연락을 받고 일하는 시간, 밥먹는 시간 빼고 하루 종일 작업했다. 최대한 보내준 3장을 다 작업해보려고 했지만 한 장은 이미 업체에서 빛 효과를 강하게 줘서 내가 더 건드릴 수 없는 파일이길래 2장만 해서 보냈다. 작업이 완성되는대로 보내곤 피드백이 언제 오려나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메, 이거구나, 땡큐ㅋㅋ’ 하고 인사가 끝이났다. 순간 허탈하고 섭섭했다.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결혼식이 5개월은 지난 지금, 다시금 이렇게라도 축하의 의미를 보낸다는 것, 내 시간과 노력에 대한 감사인사는 좀 더 있길 바랬다.
남이 원하는 때에 도와줘야 도움이지, 내 마음이 그래서 하는건 오지랖이라고 했다. ‘아 내가 오지랖부렸구나…’ 아차 싶었다. 그래서 이제 안하려고 한다.
6.
I hope that in this year to come, you make mistakes. Because if you are making mistakes, then you are making new things, trying new things, learning, living, pushing yourself, changing yourself, changing your world. You’re doing things you’ve never done before, and more importantly, you’re doing something. So that’s my wish for you, and all of us, and my wish for myself. Make new mistakes. Make glorious, amazing mistakes. Make mistakes nobody’e ever made before. Don’t freeze, don’t stop, don’t worry that it isn’t good enough, or it isn’t perfect, whatever it is: art, or love, or work or family or life. Whatever it is you’re scared of doing, Do it. Make your mistakes, next year and forever.
- Neil Gaiman
나는 다가오는 새해에 당신이 실수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실수를 해야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시도하고, 배우고, 살며, 스스로를 독려하고 변화시키고, 당신의 세계를 바꿀테니까요. 당신이 이전에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하세요, 그리고 더 중요한건 무언가를 하세요. 그래서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겁니다. 또한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바랍니다. 새로운 실수를 하세요. 영광스럽고 놀라운 실수를 하세요.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실수를 하세요. 주저하지 마세요, 멈추지 마세요, 충분하지 않을까봐 완벽하지 않을까봐 걱정하지 마세요. 예술, 사랑, 일, 가족 혹은 인생 무엇이든지. 당신이 두려워 하지 못하는 무엇이든, 하세요. 당신의 실수를 하세요. 내년에도 그리고 영원히. -닐 게이먼
7.
이것들 또한 나의 실수겠지.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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