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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5.05 2018년 5월 4일 기분이 그저 그런 날.

날이 우중충해서 그랬나, 오늘 나는 실내청소를 배정받았다. 아마 아직 아는게 많이 없어서 뭘 못시킨다는 느낌도 살짝 든다. 청소기로 바닥청소하기, 화장실 청소하기. 1,2층 다 하고 시간이 남으면 어제 다 못한 잡초뽑기. 그리고 병아리 밥 주기. 이게 다다. 


이 집 청소기가 엄청 신기하다. 벽 중간에 청소기가 설치되어?있다. 뒷 문에서 엄청 긴 호스만 가져와서 꼽고 작동시키면된다. 오래되서 강력하지 않다고 하지만 일단 나는 처음 봐서 몹시 신기하다. 파이프오르간처럼 집을 지을때 이것도 같이 설치해야하는 건가? 전기코드를 따로 꼽지 않았는데 어떻게 작동하는거지? 궁금한게 많다. 여하튼 이 파이프가 지하에 있는 큰 통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데, 3주 있었던 이탈리아 친구들이 지하엔 안 가봤다고 하니, 나도 갈 일 없을 것 같다. 화장실 청소는 여느집의 화장실 청소와 같았다. 식촛물을 뿌려 때를 불리고 닦아낸다. 이런 소소한 가사활동만으로도 하루가 금방인데. 아, 요즘 자꾸 시간에 묶여 사는 것 같다. 시간이 빠르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냐'며 아쉬워하고, 오늘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조급해하고 속상해하고. 하루가 짧다는 걸 아직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왜 이러는 걸까.


그저께 병아리들이 이사왔다. 그 전 날 태어났다고 하니까 오늘로써 생후 4일 된건가. 한국에 있을 때 병아리 사료를 물에 불려줬던 것 같은데, 여기는 그냥 풀 잘라 준다. 아직 작고 밥도 잘 못먹어서 하루 한 번만 주면 되지만 1-2주만 지나도 하루 두번 꼬박 주어야 할거라고 한다. 병아리 풀 자르는게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뜯어낸 풀 중 건강하지 않아서 갈색된 풀은 빼고 한 꼬집 정도되는 그 적은 양의 풀을 또 엄청나게 잘게 잘라주어야 한다. 건강한 풀 찾는 것도 일이고, 병아리한테 좋다는 클로버를 찾는 것도 일이다. 게다가 클로버는 자르기도 수고스럽다. 그래도 병아리가 잘 자란다면, 하루 네번이라도 해야지. 


일을 마치고 간단하게 빵과 오렌지를 먹었다. (점심은 미리 따로 먹은 상태다.) 나를 이곳에 데려다준 호스트의 아들이 함께 있다가, 지내는거 괜찮냐고 물어본다. '뭐, 괜찮아’ 했다가, 사실 밖에서 일하는건 일하는거니까 괜찮은데, 내가 잘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어서 그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수확은 여러번 해봤지만 봄에 작물을 심는건 처음해보는데, 나는 너희 농장을 망치고 싶지 않다. 일 할때마다 항상 내가 잘하고 있는지, 맞게 하는지 걱정한다고 했다. 그러니 돌아온 답변은 물론 작물심기를 어렵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수확보다 쉽다. 그냥 적당한 거리를 두고 퐁퐁퐁 씨앗을 심으면 된다고 한다.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그 적당한 거리가 뭐냐고, 적당한 깊이, 그게 어느 정도냐고’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알았다고 하고 말았다. 그래 어쩌면 어렵게 생각하니까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 근데 이 이탈리안 친구들 왜 안들어오는 걸까. 이 사람들 하드워커가 분명하다. 왠만해선 점심시간도 일단 스킵하며 일하다가, 일을 마치고서야 늦은 점심을 먹는게 다분한데, 오늘은 왜인지 점심시간 맞춰서 밥먹길래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 했는데, 일을 안끝낸다. 아무래도 자기들이 맡은 프로젝트를 끝내고 가려고 그런가보다. 왜 프랑스인들이 야근하는 한국인에게 경고했는지 알 것 같다. 너네가 그렇게 오래 일하니까 내가 괜히 눈치보인다구. 미쉘이 웃고 있잖아.


식사 준비가 한창이던 때에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일 전 엄마랑 통화할 때, 호스트 부부랑 이탈리안 커플 그리고 내가 지내고 있다고 하니까 '오빠가 얼른 가야겠네' 라고 했다. 그땐 '와도 똑같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건지 모르니 불안한데,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 나한테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이 없다는게 잠깐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트 부부는 소파에 앉아 뭔갈 논의 하고 있었고, 이탈리아 커플은 함께 요리를 하고 있었다. 평화로운 이 속에서 갑자기 난 왜 외로움을 느낀걸까.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잘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혹은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할 것이다.’ 나는 매번 왜 어렵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고, 상황들을 혼자 견뎌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게 자기연민인건가? 혼자서만 심각해진다. 남들이 그러면 그냥 가볍게 생각해버리라고 툭툭 내뱉었으면서 정작 본인은 그러고 있지 못하고 있으니, 그때의 그 말 들 다 허세였다. ‘현재’, ‘사실’을 바로보는 연습. 즉, 명상을 해야겠다. 휴 명상은 또 언제하나.


오늘은 식사를 일찍했다. 호스트 부부가 젬베연주를 하는데 같이 하는 친구들이 와서 합동연습을 한다고 한다. 강풍이 불어서 그런가 오늘은 두명만 온다고 한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적인 노년의 모습을 보고 있는다는 생각을 했다. 뭐, 이상적이라는건 언제까지나 생각일때나 이상적이지 막상 저 순간이 되면 나는 분명 지나간 젊음에 대해 아쉬워하겠지? 여하튼 하는거 구경하면서 일기쓰다가 자리가 불편해서 이층 소파로 올라왔다. 일기를 쓰다가 기분이 우울해져서 밀린 웹툰보고 인터넷 뒤적이고 있는데 (나는 시간이 없다고 징징대면 안된다. 인터넷이 내 시간도둑이다!) 호스트가 내려와서 파이 먹으라고 불렀다. 그러고보니 언제 음악이 멈췄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무신경하게 있었다. 안냐세는 못하는게 뭘까 하며 맛있게 구워진 쿠키를 집어드니 미쉘은 친구 한 명과 얘기하고 있고, 이탈리안 커플은 다른 분이랑 얘기하고 있고, 자연히 밥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말을 건다. 토론토에 있었던 시간에 대해서 얘기 몇마디 했는데, 영어가 유창하지 않으니까 말을하다가 자꾸 답답해하고 버벅이고 그러면 자연히 얘기가 영어로 흐른다. 밥이 내 영어에 대해서 칭찬했다. 극복하지 못한 영어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말을 많이 했던 건 아닌데, 글로 쓴 영어 즉 문자나 메일에 대해서는 완벽하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 두번 세번 여러번 확인해서 그렇다고 하니까 '영어가 모국어인 나도 당연히 그런다, 전에 왔던 일본인 헬퍼는 처음에 영어를 하나도 못했지만 그래도 4주뒤에 나아져서 갔으니 너도 계속 나아질거다, 종종 여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오니까 많이 얘기해라'라고 했다. 어쩌면 뻔한 얘기를 적어두는 이유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라고 내 머리에 새기고 싶은것 같다. 

오늘 일하는 중에 갑자기 재민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내가 직접 본 건 아니었고 시 창작 수업때 선생님이 말해준 장면이 있다. 통영 동피랑 마을 정상에 올라가면 통영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그 곳에 정자가 새로 만들어졌는데, 그 전에 아직 어수선하던 때라고 했다. 그곳에 쭈구려 앉아 담배 피던 재민이, 그런 재민이를 보면서 선생님은 '저 놈 시 써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 정확한 문장이 아닐 수 있다.) 그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 거기서 시작된 이야기가 현재, 현실의 재민이로 건너뛴다. 지금 뭘하고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매일의 일상을 지켜내기위해 열심일거다. 라디오를 듣다가 시 한구절 나오면 언제 시쓰나 죄책감도 느낄 거 같고, 대학 동기들 만나 술 한잔하며 이런저런 얘기 나누는데 한때는 창작에 대해 나눴던 우리의 이야기가 이제는 너와 나의 다른 이야기가 됐다는 사실에 외로움도 느낄 거 같고, 대뜸 네 시를 읽고 싶다는 누군가의 연락에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할거고. 예술한다는 사람 누구나가 한번 쯤 겪어봤을 그 얘기로 영화를 만들면 너무 뻔한 얘기가 되려나.

그러다 생각은 예술로 옮겨갔다. 살아있는 작가들은 끊임없는 비판 속에서 자기 작품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글쎄 나는 아직 마음이 단단하지 않아서 그런가 ‘나랑 취향이 다를 수도 있지’ 혹은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했지 뭐 이유와 의미가 필요하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한 두번이지, 그냥 미적지근한 반응만 봐도 마음이 벌써 서글프고 누가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정말 말 그대로 영혼이 다치는 느낌을 받는다. 정말 힘든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작품활동을 계속 하는 이유는, 예술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을 해야만 하는 그들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 걸까.  


Posted by ㅇㅈ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