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와서 드디어 일을 시작했다. 시작은 소꿉장난같은 씨앗심기였다. 아직 이곳은 날씨가 춥고 땅이 얼어서 큰 텃밭으로 옮겨 심기 전에 집안에서 미리 싹을 틔워 키우는 모양이다. 작은 이 텃밭도 3년 단위로 작물 심는 장소를 달리하며 고민하는 걸 보니 앞으로의 여정에서 배울 것들이 정말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해놨던 브로콜리 새싹은 벌써 발아와 성장을 하고 있다. 내가 한거라고는 물에 불려놓은 것과 흙위에 얹어놓은 것 뿐인데, 다음주면 먹을 수 있다. 진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그 다음엔 잔디밭의 낙엽을 정리했다. 싹싹 긁어모으니 낙엽이 된 잔디가 수레로 나오고 훨씬 정돈된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청소를 하는구나, 새삼 느낀다. 그리고 몸으로 하는 일은 정말 삼십분만에 반응이 온다. 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동작을 힘주어 계속하니 생각없이 하다간 다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벌써 언제 끝나나 싶은게 이래서 농사 지을 수 있으려나 걱정된다. 정리한 잔디 위로 카누와 카약을 보관할 수 있는 지지대를 옮겨놓고 차곡차곡 그것들을 쌓아두니 그럴 듯 하다. 이렇게 넓은 호수가 많으니 이런 스포츠가 발달했구나,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져서 가기전에 나도 한 번 타보고 싶은데 섣불리 도전했다가 호수 중간에서 빠지면 답이 없겠지? 



3.
인생 처음 장작패기에 도전했다. 티비에서 쩍쩍 갈라지는 나무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는데?’했는데, 역시 사람이 이래서 경험을 해봐야한다고 직접해보니 다시는 그런 말 못하겠다. 아직은 요령이 없으니 그렇겠지만 도끼나 나무 중간은 커녕 그냥 쬐애금 스크레치만 내고 턱턱 박힌다. 그러면 내 팔에도 충격이 어마어마하고, 빼는것도 쉽지가 않았다. 언제 또 장작패기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단 하나의 조각이라도 만들어보자 기를 쓰고 도전했더니 한 3개? 했나보다 ㅋㅋㅋ 마님이 돌쇠를 좋아할만하네, 크 돌쇠 엄지척

4.
그렇게 일을 마치니 엄청 허기가 졌다. 뭐했다고ㅋㅋㅋ. 오자마자 국 끓여서 밥말아 김치에 먹었다. 어라? 독일친구가 나를 따라먹는다. 어제 한 얘기가 그냥 으레 했던말은 아니었구나, 너 이게 진짜 맛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된장국이 성공할 줄이야 아싸. 남은건 그냥 쌈장 만들어서 오이 찍어먹어야지. 된장 클리어!

5.
밥 먹고 살짝 입이 심심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다. 이 독일친구들이 초콜렛 노래를 부른다. 작은 초콜릿 한 조각이면 되는데, 그게 없어서 자꾸 군것질을 한다고 한다. 요거트, 바나나, 사과 … 이런 군것질이면 괜찮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관에 가서 초콜렛을 얻어와야겠다고 한다. (눈도 오고 나가기 싫어서 그냥 바나나 하나 먹을라고 생각했는데, 이 친구들 항상 함께 하려고 한다. 결국 같이 갔다.) 본관에 갔더니 쿠키용 초콜렛이 있으니 초콜렛 쿠키를 만들어가는게 어떻냐고 한다. 이 친구들 냉큼 오케이 했다. 맙소사. 쿠키를 직접 만든다고? 이상하게 베이킹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옆에서 구경하면서 고양이랑 노는데 집중했다. 이 집 고양이 완전 개다. 사람 진짜 좋아한다. 무릎에 앉아 잠들었는데 내가 어찌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 사이 뚝딱 쿠키가 완성됐다. 쿠키가 만들기가 정말 어려운건 아니구나! 제과제빵은 계랑이 생명이랬는데, 이 친구들 그냥 대충 때려 넣었다. 근데 맛있다. 내가 밥 할때 쌀 대충, 물 대충 하고 있으니 호스트가 계량컵을 갖다줬는데, 내가 ‘왜 이래~ 나 한국인이야~’ 했다. 그것과 같은 느낌인가. 나의 최애 책 [이런 여행 뭐 어때서]에 보면 이런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다시 읽고 싶은데 e-book이 없다.

6.

눈이 펑펑온다. 정말 펑펑 펄펄 이 곳이 캐나다라는걸 다시금 확인한다. 눈이 와서 나가 놀지는 못하고, 집에서 보드게임을 하자고 했다. 한국에는 인생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the game of LIFE’. 음 그래 한번 하니 재밌네.

 

7.
오늘 저녁은 독일친구들이 준비한다. 독일식 맥앤치즈라는 Käsespätzle(카이제슈베츠?)와 팬케잌 Kaiserschmarrn(카이저슈만?), 그리고 할머니 레시피의 샐러드까지. 독일음식이라고는 소세지랑 슈바인학센밖에 모르던 내가 인생에 이 메뉴들을 먹을 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까. 매번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증이 사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아마 이런 순간들 때문일거다. 식사하며 독일과 캐나다의 크리스마스에 대해 들었는데, 내가 알고 있던 크리스마스는 완전히 북미 크리스마스고, 독일 크리스마스는 또 달랐다. 산타는 그냥 코카콜라 아저씨고 자기들 나름의 캐릭터가 있고 24일이 진짜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이들의 얘기를 듣는게 재밌고 좋은데, 한편으로는 딱히 할 얘기가 없다는것에 대해서 속상했다. 아마도 말이 안트여서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할 얘기도 없어지는 것 같다. 도대체 나의 입은 언제 트일까. ㅋㅋㅋ 


Posted by ㅇㅈ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