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이야기/A2018.4

2018년 5월 21일 우리는 왜 결혼하려고 하는 걸까.

ㅇㅈ8 2018. 5. 23. 11:11
생각의 시작은 친한 친구의 단톡으로부터였다. 내 친구는 최근 연애를 시작했다. 상대와 나이 차이가 많은걸 걱정했고, 평소의 이상형과 다르다고 고민했지만, 말이 잘 통하고 편하다고 했다. 우리는 그거면 됐다고 친구의 새 연애를 응원했다. 그리고 친구의 남자친구는 친구와 결혼이 하고싶은가보다. 전부터 결혼을 하고 싶어했던 친구는 그 말에 자꾸 휩쓸린다고 했다. 친구가 주말에 친한친구와 함께 남자친구를 만났다고 한다. 남자친구를 향한 친한 친구의 좋지않은 반응에 내 친구는 적잖이 당황하고 속상해 우리에게 얘기를 했다. 그냥 연애하는거면 괜찮은데 결혼얘기를 자꾸해서 더 심란하다고 했다. 

연애와 결혼은 어떻게 다른걸까. 우스갯소리인지 진심인지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을 미룰 수 있으면 최대한 미루라고 조언하고, 결혼하는 사람에겐 '너 이제 끝났다'라고 한다. 좋은 뜻으로 하는 소리들이 아니니 결혼이 썩 그리 좋은것만은 아닌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자꾸 결혼이라는 환상 속에 살고 있는걸까. 

왜 결혼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비혼주의자다. 결혼 할 의지가 없다. 그 원인은 많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가족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갓난이 젖도 못물리게 들들볶았던 시댁과 제 멋대로 살았던 아빠, 그 속에서 홀로 나를 그리고 가족을 지켜낸 엄마의 희생. 그것을 보고 자란 나는 당연히 결혼 후 나의 위치가 엄마의 자리가 될거라고 짐작했다. 물론, 아빠 같은 사람 안만나면 된다고 친가댁과 다른 시댁을 만나면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봤다. 정말 그럴까? 나의 친가와 나의 아빠가 특수한 경우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극히 한국적이고, 일반적이고, 그래서 가부장적이다. 제 아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할머니에게 우리 엄마는 아들 못 낳은 못난 며느리(한참 후에 내 ‘남'동생이 생기고 할머니의 태도가 달라졌음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아들이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편하게 사는 며느리였을 것이다. 명절에 술마시고 널브러져 있는 아빠 대신 얼굴도 본 적 없는 할아버지 제사음식 차리느라 엄마는 큰엄마들은 그 좁은 부엌에서 기름냄새에 절어갔지만 밥 한끼 편하게 먹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는 너무 흔해서 쓰는 나도 민망하다. 아빠는 술 도박 바람 삼박자를 고루갖춰 가정에 소홀했으면서 집안꼴이 이게 뭐냐며 엄마에게 핀잔을 줬다. 그 행동들에 대해선 반성과 용서 대신 '남자가 사회생활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는 엄마의 불똥은 종종 내게 튀었다. ‘너 때문에 이렇게 산다’라는 말을 하곤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엄마가 행복했을 것 같았던 어린 시절에는 같은 소리를 내 자식에게 하기 싫어서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나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안다. 설령 나의 출생이 부모님의 인생 속에 계획된 축복의 결과가 아니래도, 나를 키워내는 것을 누군가 함께 해줬다면, 엄마가 마음 편히 본인의 꿈도 차츰 이뤄낼 수 있었다면 엄마는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결혼을 거부한다. 이 사회의 가부장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내가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느라 나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순간이 생길거라면 인생에서 결혼을 지워버리는 편이 낫다.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은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은데 체력이 달려서 못쓰겠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출발이 어디었을까?'에 대한 상상도 해봤고, 아이러니하지만 나 또한 가지고 있는 결혼 혹은 동거 생활에 대한 환상-결혼을 거부하는 내가 바라는 결혼생활-, '지금 시대에 결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라는 고민. 쓸 게 너무 많은데ㅜㅜ 이래서 작가는 엉덩이로 글을 쓰는 것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