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이야기/A2018.4

2018년 5월 1일 농장이로구나.

ㅇㅈ8 2018. 5. 4. 12:49
적당한 8시에 일어나서 빵 두조각 아침을 간단하게 먹으며 오늘 할 일에 대한 브리핑을 전달 받는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뭔가 되게 있어보이는데 뭐지? 오늘의 할일은 오전에 nut(견과류)심기, 잔디밭의 돌줍기, 화단에 꽃 심기, 도마의 왁스 닦아내기, 오후에 Bob의 교육을 위한 시간내기. 그러니까 오전에 3시간 반, 오후에 1시간 반 이렇게 일하기로 했다. 

제일 중요한 견과류 심기부터 시작했다. 
텃밭에 미리 좋은 땅이 만들어져 있다. 아마 오늘을 위해서 한 두달 전에 비료를 심어놓고 낙엽을 덮어놓았을 것 같다. 자세히 물어보지 않아서 맞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많은 지렁이를 보고 호스트가 좋아했다. 아, 지렁이를 심어 놓았나보다. 여하튼 오늘 나는 Butternut, Black Walnut 두 종류의 견과류를 심는다. 
낙엽을 걷어내고, 그 속의 촉촉한 흙에 씨앗(이라고 부르는게 맞는지 모르겠다)길을 만들고, 심고, 흙과 낙엽을 다시 덮어둔다. 과정을 말로 설명하니 이렇게 금방인데 한시간반에서 두시간은 걸린 것 같다. 그렇게 깊게 심지 않는다. 여기서 싹이 날 때까지만 키우고, 모종이 되면 옮겨 심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게 견과류다 보니 동네의 다람쥐(Squirrel)들이 호시탐탐 훔쳐갈 기회를 노린다고 한다. 씨앗을 보관해놨던 플라스틱 통에 이미 구멍이 한주먹만하게 나있다. 도대체 얘네가 어디서 뭘 먹고 볼이 빵빵해져서 돌아다니나 몰랐던 호스트는 그 출처가 당신네 씨앗이라는 걸 알고 기가 차 했지만 금방 ‘We can share 같이 먹지 뭐’한다. 쿨하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Permaculture라면 응당 그래야 할 것같고 그렇다.


다음엔 화단에 꽃 심기다. 그런데 웬걸 화단이 이미 풀방이다. 들판의 쑥도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아직 꽃 안핀 식물과 잡초를 구분하지 못한다. 죄다 파릇파릇 뭐가 올라오는데 아무데나 막 심었다가는 남의 화단 망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며 일단은 했다. 잘 뿌리내려 자라기를 기원한다. 

잔디밭의 돌 줍기를 할 때쯤에는 해가 중천에 떴다. 이거 먼저할껄 그랬다. 꽃 심을땐 쌀쌀헀는데. 일을 시작하고 보니까 잔디밭이 집을 기준으로 사방으로 있다. 앗, 전부 다 해야하는건가? 일단은 호스트가 설명해준 이쪽 단면만 해야겠다. 모자라게 일하면 다음에 또 해도 되겠지만 넘치게 일하기엔.. 안돼안돼. 근데 그때 마치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다. 뭔가 대단한 농사일을 할꺼라고 기대했는데, 돌 줍고 있어서 그랬나.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별거 한거 없는것 같은데 벌써 세시간이 흘렀고 벌써 고단하다. 하루가 너무 짧다. 갈수록 짧아진다. 그래서 슬프다. 나는 줄이고 줄여도 아직 하고 싶은게 많은데 하루는 왜 이렇게 짧을까. 나는 왜 빠르지 못할까.


오전 중에 할 바깥일은 끝난 것 같아 들어와서 빵 두조각 더 먹고, 효리네 보면서 도마의 왁스를 닦아냈다. 샐러드 파스타 해먹는 걸 보니 나도 샐러드 파스타가 먹고 싶어서 점심 먹을 겸 냉장고를 털었다. '이거 다 먹어도 되는거겠지?’ 또 걱정하면서 냉장고에 남아있던 파스타와 파프리카 볶음을 다 먹었다. 친구와 함께 살 때, ‘아 집에가서 이거이거 먹으면 되겠다’하고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때 허탈함을 느낀적이 종종 있어 조금 남아있는 이것들이 그들이 남겨놓은게 아니길 바랄뿐이다. 왁스닦기는 As much as you can,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하라고 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있나 닦아도 닦아도 미끄덩 한 것 같다. 대충 일한지 3시간 반 된 거 같고, 마른 수건에 뭐가 더 안 묻어 나오는 것 같길래 그만 뒀다.

효리네를 마저 보는데 잠이온다. 낮잠 좀 자야겠다.

호스트한테 전화왔다. 온실 문 열어놨냐고 물어본다. '응 열어놨지.' '너 잤어?' '응 나 자고있어.' 깔깔깔 웃는다. 한시간 내로 올테니 이제 일어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삼십분 더 자고 일어났다. 무슨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껄껄

Bob이 돌아와서 나무 주변에 Comfrey 심는 걸 가르쳐줬다. 이 식물은 Permaculture의 기본이라고 가르쳐줬다. 왜냐하면 이 식물의 뿌리가 3~4m정도 자라는데, 그렇게 깊게 자란 뿌리가 깊은 땅 속의 영양분을 잎으로 다 끌어온다고 한다. 그 다음, 잎은 가을이 되면 낙엽이 되고, 잎에 저장된 모든 양분들이 땅 표면으로 흡수되고, 비가오고 중력의 영향을 받아 다시 양분이 땅 아래로 내려가고. 즉 양분의 순환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뿌리가 깊게 내리지 않은 어린 나무들 옆에 주로 심어주는데, 이 Comfrey가 또 엄청 넓게 자라서 Comfrey아래는 그늘지게 해 잡초가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Comfrey 자체의 생명력도 어마어마 한 것 같다. 대충 텃밭 아무데서나 자라고 있는 Comfrey를 캐다가 대충 나눠서(그래도 최대한 뿌리와 풀이 한 묶음이 되도록 했다.) 대충 심으면 된다. 대단한 식물이다. 

또한 Bob은 Permaculture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해줬다. Permaculture는 절대 하나의 작물만 심지 않으며, 한해살이 식물을 키우지 않는다고했다. 하나의 작물만 심으면 정해진 영양분만 흡수하기 때문에 땅 속 양분이 불균형 해지고, 어느 이유에 있어서 그 작물이 병에 걸리거나 자연적 타격을 입으면 결국 다 망하는 걸로 인간에게도 좋지 않다고 했다. 여러개의 작물을 심으면 하나가 잘 자라지 않아고 다른 게 잘 자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한 한해살이 식물로 농장을 꾸리면 계속 인간이 간섭해야 하지만, 여러해살이 식물들은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고 나면 스스로 알아서 순환하기 때문에 자연에게도 인간에게도 이로운 작법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잠깐 찾아보니, 한해살이 식물은 뿌리가 얕게 내려 비료를 필요로 하고 결국 땅과 하천을 오염시키며,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반면 여러해살이 식물은 뿌리가 3-4m까지 깊게 자라 알아서 땅 속의 물과 양분을 충분히 흡수해 경제적 환경적으로 이롭다고 한다. 참조: http://ruras.blog.me/220666460360)

Bob은 본인들이 키우고 있는 여러가지 나무들을 소개하면서 나무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한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물을 항상 제공해 줄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물이 최대한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땅을 디자인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땅의 모양이 반복되는 S자모양이었나보다. 단순히 배수가 어쩌고 하고 생각했었는데, 물을 빼는게 아니고 머금고 있는 디자인이었구나. 놀랍구나. 그러면서 이 곳에서 힘들게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통 농업하면 체력적으로 힘든 것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하나에 집중된 고된노동이 아닌 이거 조금, 저거 조금 그렇게 하루 5시간만 일하면 된다고 했다. 그냥 우리를 조금 도와주는 거라며 Permaculture는 Lazy farming이라고 했다. 와, 이거다! Lazy farming, 게으른 농업이라니! 나에게 딱 맞는거 아닌가 감동의 물결이 가슴에 차오른다. 그래서 그렇게 자연 고유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했구나. 퍼즐하나가 맞춰진다. 

그리고 Bob은 선생님이라 그런지 칭찬이 후하다. 아내 미쉘이 얘기 좀 하자며 왔는데, ‘예진이가 아주 내가 원하는대로 척척해낸다’며, ‘4주 있는다고 했지? 나는 네가 벌써 좋다’며 칭찬을 계속 해준다. 엉엉 이런 칭찬을 맨날 받으면 정말정말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배우며 일하니 금방 저녁 시간이다.

오늘 저녁도 이탈리아 친구들이 했다. 이탈리안 리조또라니. 너무 맛있는거 아닌가. 이탈리아에 꼭 가야겠다 정말. 

시간 될 때 전화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메세지가 생각나서 오랜만에 엄마랑 길게 통화했다. 엄마는 있었던 일을 한참 얘기하고 들어줘서 고맙다고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엄마는 그저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건데, 어렸던 나는 엄마의 하소연이 짐 같았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걸 왜 자꾸 얘기하는거지 부담스러워했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했고, 그 불안함이 다시 엄마에게 화살이 되곤 했다. 그러나 후회는 언제나 늦고, 어느 책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싶은게 몇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다 그렇다. 엄마의 말 그냥 들어주기. 오늘은 그걸 참 잘한 것 같다. 

곧 생일 맞이 숨고르기처럼 인생에 대한 선언 혹은 문장에 대해서 고민하고 싶었지만, 바깥 일은 역시 고되다 잠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