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이야기/A2018.4

2018년 4월 27일 마지막 금요일 밤. SMORE AND MORE

ㅇㅈ8 2018. 4. 29. 02:28
우리가 지내고 있던 숙소에 오늘부터 손님이 들어온다고 한다. 11시 전에 짐을 빼줘야(체크아웃 시간이랑 같은 것 같다) 정리할 수 있다고 해서 아침에 9시 반에 눈뜨자마자 곧장 샤워하고 아침 밥 먹었다. 나는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못 먹고 자란거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오트밀이면 충분했을건데, 식빵 2장을 욕심냈다. 그래서 오랜만에 눈치보면서 급하게 먹은 것 같다. 11시부터 일 할거라고 했으나, 짐 정리때문에 10시 쯤부터 일을 시작했다. 3주 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 짐이 정말 많이 늘어나 있었다. 특히 호스트가 본관에서 가져온 커피 잔이 한 박스다. 그래서 어제 대충 짐을 싸봤는데, 짐이 줄어든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미역이랑 당면이 새로 생겼다. 어떻게 들고가나 벌써 깝깝하다.

오늘 드디어 우리가 하던 일의 정확한 이름을 알았다. Raking. 'Rake : n.갈퀴'에서 파생된 언어로 동사로는 갈퀴로 낙엽을 긁어모은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랬구나. 자꾸 반복해야 언어가 는다고 했는데 확실한 것 같다. 특히 나 같이 똥기억력은 몸에 새겨야 언어가 늘 것 같다. 언어에 대해 할 얘기가 정말 많은데, 12시 다되어서 집에 들어왔는데도 노트북을 켜는 날 보며 안된다고 절레절레 한 두 독일 친구들의 조언을 새겨 이건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일하다가 잠깐 쉬는시간에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볕이 따뜻한데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는 곳에 누우니까 찜질방에 온 것 같았다. 눕고 싶으면 누울 수 있는게 너무 좋았다. 그럴 수 있는 곳에 있는게 감사했고, 그러고 싶을 때 그러는 나를 보며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호스트가 다가온다 “OMG, He is coming” 하며 우는 소리를 했더니 독일친구들이 빵터졌다. 친절하게 아직 멀었다고, 가까워지고 있다고 중계해줬다. 딱 맞춰 일어났더니 호스트도 ‘얜 뭘까’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다. ㅋㅋㅋ. 개운했다. 엄마들이 왜 사우나 가는지 너무너무 잘 알겠다.

일 마치고 나니까 3시 정도 됐다. 5시간 일했다. 최장시간이다. 역시 하루 4시간 노동이 적절한 것 같다. 배가 고파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서 냉장고 털이를 했다. 나는 만들어 놓은 김치볶음밥에 치즈를 녹여 김 부수어 먹었고, 아스파라거스를 팬프라이했고, 그제 먹고 남은 구운 단호박과 당근도 먹었다. 점심도 욕심냈다. 그리고 이곳엔 먹을 것에 욕심있는 친구가 한 명 더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밥 시간이 되면 예민해진다. 하여튼 재밌다.

밥을 먹고 나서는 마트에 장보러 갈 겸 cozy한 카페에 갔다. 어제 호스트가 사진찍기 좋아서 나를 데려가고 싶다고 했던 그 곳이다. 역시나 아기자기하고, 흥미로운 장소였다. 다만 큰 카메라를 들고온 동양인이 낯선지 계속 나를 예의주시 한 탓에 괜히 쫄아서 자신감있게 못 찍었다. 호스트한테 사진 찍어도 되냐고 더블체크했고, 설령 안되면 그들이 얘기할텐데 나는 지레 겁먹고 주저하고 눈치봤다. 이게 나의 가장 큰 약점이다. 나 스스로가 찍히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그런지, 혹은 불편한 상황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인지 자신감있지 못한 태도. 여튼 지난번에 호스트가 혼자 장봐오면서 짐을 왕창 들고 온걸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마트에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맨날 아무도 안가니까 혼자 슥슥가버려서 타이밍을 놓쳤는데, 오늘 마음의 짐을 조금 덜었다. 

집에 돌아 와서는 카누를 탔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하니 이곳을 떠나기 전에 카누를 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와 내가 진짜로 캐나다의 호수에서 카누를 탈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여기서 그걸 한다. 토론토에서 살 때, 집 근처에 큰 스포츠 매장이 있었는데 그 곳에 전시되어 있는 카누, 카약, 패들보드를 보면서 ‘아, 여기는 이게 수요가 많은가보다’라고만 생각하고, 수요가 많다는 뜻은 그만큼 대중적인 스포츠라는걸 왜 생각못했는지, 그러면 나도 할 수 있겠단 생각을 왜 못했는지. 이곳에서 내 인생 처음하는 것들이 엄청 많다. 카누를 타고 호수 중간을 지나 강을 조금 거슬러 올라갔다왔다. 잔잔한 호수 위에서 오직 노젓는 소리와 새 울음소리만 들리는데 세상,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왜 망망대해로 도전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둘러싼 모든 것들이 까마득하다. 나는 정말 작은 존재라는 걸 또 느낀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때 참 캐나다 사람들이 부러웠다. 이래서 이 곳에 이민오려는 사람들이 많은가 싶었다. 이런 캐나다라면 충분히 사랑 할 수 있겠다. 아니 나는 이미 캐나다를 사랑하고 있다. 

피곤해서 이만 적고 자고 싶은데 노래가 좋다. 안락하고, 벗어나고 싶지 않다. 시간을 멈추고 싶다.

잠깐 쉬고, 8시 넘어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보니 오늘 하루 정말 일정이 빡빡했구나. 저녁은 간단하게 샐러드였다. 왜 갑자기 저녁이 이렇게 간소해졌지. 치킨 어쩌고 했던거 같은데 치킨 왜 없지. ㅋㅋㅋ 하루 종일 그렇게 많이 먹어 놓고 또 이렇게 욕심부린다. 배가 고프지도 않으면서. 식사를 마무리하고선 디저트를 먹었다. 아이스크림과 호박파이. 호스트가 여기는 가을되면 호박맛, 호박향 무엇이 많다고 다음에 꼭 먹어보라고 했었다. 장 볼때 같이 갔던 친구가 호박파이를 보면서 이거는 무슨 맛이냐고 물어봤다. 그러니 호스트가 ‘달아’하면서 냉큼 집어 장바구니에 담고서 밥먹고 먹어보라고 했다. 무한도전 마지막편에 나왔던 스님의 말씀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눈 앞에서 보다니. 생각하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게 부럽다. 이렇게 막 퍼줄 수 있는게 부럽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는 말이 생각난다. 결국 경제적 여유로움이 부러운걸까.


밥 먹고서는 스모어를 만들어 먹겠다고 캠프파이어했다. 왠일인지 피아가 그리울거란 말을 한다. 분위기에 취했나. 달 밝은 밤. 장작이 타들어 가는데, 꿈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먹고 사는 걱정 없이 하루 세네시간만 일하고 일기쓰고 하고 싶은거 하고 자연 속에서 충분히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꿈꾸던 삶이었다. 이렇게 짧은 3주라니 더 있고 싶다. 이 다음 농장 또한 기대되지만, 조금만 이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그리고 스모어는 맛있다. 나에겐 좀 달아서 초콜렛은 빼도 되겠다. 마시멜로우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아마 나는 이 시간을 정말 그리워 할 것이다. 


p.s. 바지가 터졌다. 아주 시원하게. 무릎이 벌써 여름나기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