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이야기/A2018.4

2018년 4월 17일 사랑과 인간관계와 그런 어려운 것들에 대한 단상

ㅇㅈ8 2018. 4. 19. 14:31

1.

사실은 하루 이틀 지나서 쓰는 일기



2.
이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3주다. 벌써 절반이 지났다. 시간이 그닥 많이 남지 않았다는게 느껴진다. 파일 정리만 좀 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일기를 쓴 게 얼마전인데, 파일 정리는 커녕 매일의 일기도 벌써 밀리고 있다. 또 다시 눈 깜짝하면 떠날 날이 올 것이다. 하루 이틀 전에 예약하느냐고 스트레스 받고 돈 더 쓰지말고 미리미리 준비를 할 참이다. 울며 미국 여행을 준비했던게 한달 전인데 똑같은 짓을 또 하고 싶지 않다. 일정을 확인하려고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폈다. 에버노트로 정리하고 난 뒤로 다이어리를 등한시 하고 있다ㅠㅠ. 토론토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Golden Lake에 가서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두었다. 요가와 명상, 드로잉, 영상 만들기, 미리미리 여행계획 세우기, 파일정리, 텍스트정리. 그때도 나름대로 생각해서 무리해서 계획하지 않은건데, 진행된 건 파일 정리 뿐이다. 처음엔 컴퓨터 작업이 급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어차피 컴퓨터는 계속 들고 다니기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이 남아있는 반면, 짐을 줄이기 위해서 실물 스크랩을 먼저 해야겠다. 넉넉한 시간에 요가와 명상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혼자 작업하다보면 그게 잘 안된다. 계속 앉아있게 된다. 일 끝나면 노트북 앞에 앉고, 밥먹고 나면 바로 노트북으로 돌아오고… 웹툰 작가들의 건강상 휴재가 이해된다. 매일 한 시간은 꼬박 요가하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말이다.

3.
어제 오늘 나의 하루에서 가장 쑈킹하고 재밌었던 일은 동기의 소식이었다. 모태솔로라고 놀려왔던 그가 누구와 좋은 감정을 가지고 만나고 있다고 했고, 그 누구가 나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구구절절, 이 얘기에 달려있는 줄줄이 쏘세지 얘기만 해도 a4 3장은 가득 채울 만큼 얽히고 설킨 그네들의 이야기. 내 동기가 기어이 그 이야기의 한 챕터를 차지하려하니 뜯어 말리고 싶은 마음 30%, 그런다고 될 거 였음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사람 마음이 마음먹는다고 될 마음이었으면 이 세상 평화로울거다 30%, 그래 좋으면 됐다 행복해라 40%.

그리고 동기는 수 년 전 얘기를 꺼냈다. 그때의 우리들.

4.
그때는 그랬다. 새로 속하게 된 나의 무리가 내 생활의 전부 같았다. 십 수년은 더 된 그 낡은 생각들에 대해 잘못된 거 아니냐고 따져 묻기도 전에 비판적 생각이란게 없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따랐다. 이들이 나에게서 등을 돌리면 아싸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고, 선배들로부터 미움받고 싶지 않았고, 후배들이 좋아하는 선배가 되고 싶고 그랬다. 그 무리가 깨지는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좋은 후배일 수는 있었겠지만 좋은 선배는 아니었다. 비판적 생각이 없었으니, 후배들의 요구에 대해 고민하고 응할줄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고를 키워왔고, 꼰대가 되어갔다.

5.
여자와 남자의 성비가 비슷하지 않은 우리 과에는 실타래처럼 얽힌 연애사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 연애들로 인해 꼭 불편한 사이가 생겼고, 덩달아 제 3자들이 더 이상 그들을 함께 보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술자리의 안주가 되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그런 얘기들.
처음에는, 그러니까 6-7년전에는 '도대체 왜?'라는 마음이 제일 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사귀는지 모르겠는거다. 저 사람이 누구랑 사귀었고, 누구랑 사귀었고 그런거 다 아는데 또 사귄다고? 외로워서 그러나? 그리고 도대체 어디에서 매력을 느끼는거지? 했다. 맨날 만나 구질구질한 꼴 다보면서 어디서 예쁜 구석을 발견하는지 모르겠더라. 근데 그렇게 맨날 보며 쌓이는 정이란게 있었고, 구질구질한거 다 봤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고,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사람은 오래보아야 그 매력이 드러난다는 걸 알때 쯤 나도 누구를 좋아하기 시작했었다. 자꾸 아는데 모르는척 하는 것 같길래 고백하려고 만났는데, 그 어색한 공기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이렇게 차이면 다시 이 사람을 보고 싶지 않을 것 같고, 그러면 이 사람과 내가 함께 속한 이 무리를 벗어나야 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무심한 그의 태도에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차일 각오가 없다는건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냥 ‘아니에요’하고 말았다. 그때는 그 무심한 태도가 고마웠다. 다행히 이 무리 속의 나라도 지켜낸 느낌이 들었다. 

6.
휴학도 2년이나 하고, 나도 연애를 하면서 차츰 바뀌던 생각은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고, 내 마음 또한 내가 어찌 할 수 없다는 걸 수 많은 삽질과 수 많은 상처를 통해 배웠다. 어차피 상처 받을 사람은 받고, 아무리 대못을 박으려 해도 꿈쩍않는 사람이 있고, 어제의 죽고 못살 것 같던 사이가 하루만에 남남이 될 수도 있고, 피하려고 했던 사람을 들여다보니 나랑 닮은 구석이 꽤 많을 수도 있고. 혼자여도 괜찮고, 친구가 한 명 있으면 더 좋고. 

7.
한때는 카카오톡 친구가 수백명이었는데, 지금은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한참 대외활동이 많던 시절 수 많은 단톡방들이 자랑같았는데, 그러는 동안 나는 가족에게 오랜 친구들에게 소홀했고, 나 자신에게 무심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툭툭 내뱉은 말들에 영혼이 다치고, 다친 영혼을 돌볼 새도 없이 또 상처받는게 반복되며 나는 아는 사람들을 줄여나갔다. 인생이 그리 긴 것 같지도 않은데 이 사람 저 사람 신경 쓸 새가 없고, 다른 이 때문에 내 행복을 포기 하고 싶지 않다. 나를 스쳐간 수 많은 사람들처럼 그 또한 스쳐가면 된다. 안보면 그만이다. 

8.
오늘도 내가 행복한 하루 되길 



9.

호스트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 펍이 있다고 데려가줬다. 아일랜드 펍이나 뉴욕의 재즈바에 비할게 못되지만, 드디어 맥주라니 10일 만에 술마시는 것 같다. 라이브 연주는 언제나 옳다. 남 눈치보지 않고 춤추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함께 춤을 췄다. 캐나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