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13일 평화로운 13일의 금요일
1.
어제 눈이 정말 많이왔고, 눈이 좀 더 녹아 있을만한 10시에 일을 시작하자고 해서 한 시간 더 잤다. 아니 그런데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꼭 이 친구랑 눈이 마주친다… 얘는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던 걸까. 저 웃음은 그냥 젠틀한 그런 미소일까, 자고 일어난 내 표정이 웃겨서 그런걸까. 두번 더 그러면 물어봐야겠다. 밥먹을때도 나를 쳐다보는게 느껴진다. 아무 말도 안하고 바라만봐도 좋은 사이가 아니기에 나는 이 친구의 이런 시선이 부담스럽다. 이게 이들의 문화인가. 할 말 있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2.
오늘의 일은 밤 사이 쌓인 눈 치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렇게 눈치우고 있으니 어릴 때 눈이 진짜 많이 왔던날 집 앞에서 슈퍼가는 길 까지 눈을 싹 치웠더니 동네 어른 중 한분이 고맙다고 했던게 생각난다. 그때 엄만가 아빠는 이런걸 뭐하러 하고 있냐고 했었는데. 그래서 다시는 눈 안치웠다. 눈이 진짜 무겁다. 그 다음에는 두대의 차 내부 세차를 했다. 발판털고, 청소기로 먼지 빨아 들이고, 물걸레로 안에 닦기. 이것만 했는데 진짜 달랐다. 오늘도 청소의 중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예전에 우리가족은 차에 항상 뭐가 많았는데, 이 차들은 짐이 없는게 신기하다. 문화적 특성일까 개인의 차이일까. 냉장고 청소까지 마치고 나니까 배고프고 추웠다. 심지어 사진도 찍을 겨를이 없었네.
3.
점심으로 전에 오타와 갔을때 사온 푸틴을 마저 먹으려고 했는데, 하... 스트레스 받는다. 어제 얘 내 푸틴 맛있게 먹어놓고서 오늘은 bad food한다. 장난? ‘야, 너 어제 맛있게 먹었자나’하니까 아무말도 안한다. 그려려니 싶다가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푸틴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조금 남았고, 그걸론 부족해 엊그제 요리하고 남았던 두부와 호박으로 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얘가 계란 먹을 거냐고 물어봤다, ‘음 아니 이따가 먹을래 두부랑 계란으로 뭐 만들어볼라고’하니까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럼 나도 그때 먹어야겠다 하는거다. 네꺼도 만든다고 안했는데, 너 되게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같이 먹을 수 있냐고 물어나 봤으면 기쁜 마음으로 그래 어차피 하는 김에~ 생각할건데, 확 빈정상했지만 그래 하는김에 4명 다 같이 먹게 만들어야겠다. 오늘은 사진을 안찍고 싶었나, 이 사진도 없네 ㅠㅠ. 간장+식초+고춧가루로 소스를 만들어 같이 냈다. 호박전이 인기가 좋았고 소스가 인기가 좋았다. 소스가 인기가 좋을 줄은 정말 생각못했다. 심지어 호스트는 아침에 계란에 먹고 싶다한다. 시작은 즐겁지 않았지만 끝내 즐거워져 다행이다~? 했는데, 얘… 쏙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랑 다른 독일 친구가 설거지 했다. 호스트는 재료를 준비해주니까 백번이라도 설거지에서 빼주고 싶지만, 너는…!!! 분노!!!
4.
먹고 나니 공간도 따뜻하고 슬슬 잠이 왔다. 햇빛이 들어 창가가 정말 자기 좋게 세팅되어 누워 잤다. ㅋㅋㅋ 독일친구들은 자전거 타러 나간다는데 몰라 나는 자고 싶었다. 애들아 나 혼자 있는거 진짜로 좋아해, 뭐 같이 안해도 돼. 나는 잘래:-) 그러나 거기서 두시간 자니까 허리가 아프더라. 사실 잘 수 있는 곳이 아니라서 올라가 침대에서 더 잤다. 낮잠 자니까 너무 좋다. 얼마만의 낮잠인지. 내가 요즘 파일 정리한다고 늦게 자니까 얘가 you crazy했었다. 너가 두시간 자전거 타는거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이런게 그냥 좋은거야. 물론, 나도 두시간 자전거 타는거 좋아하는데, 이것도 내가 좋아하는거라고.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아줄래? 쓰다보니 또 짜증날라 한다.
5.
자고 일어나서 못보고 있었던 효리네 민박도 보고,샤워도 넉넉하게 하고, 마스크팩도 하고, 아직도 덜마른 느낌이 드는 빨래를 말랐다고 믿으며 개어놓고 나만의 시간을 자알 보냈다.
6.
저녁은 호스트의 파스타다. 냉장고에 쇠고기와 닭고기가 있었는데, 유통기한 지났다고 쇠고기를 쿨하게 버렸다. 냉동실에서 보관하던가 냄새라도 맡아보지… 여튼 나는 파스타가 너무 좋으니까 맛있게 먹었다. 아, 캐나다에 와서 배운게 있다. 남은 파스타를 그냥 냉장보관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게 퍼진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다 먹거나 아까워도 버렸는데 이제는 안그래도 되겠다. 그리고 면이랑 소스를 따로 담아내서 먹는사람 기호에 맞게 소스를 퍼간다. 밥위에 카레 뿌리듯 말이다. 이탈리아에 가서 온갖 파스타를 먹어보고 싶다 정말로. 또 나오는 나의 최애 책 [이런 여행 뭐 어때서]의 하정 작가님이 카우치서핑으로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했는데, 정말 좋은 호스트를 만났고 나도 그렇게 요리하는 호스트를 만나고 싶다는 로망이 생겼다. 그래서 자꾸 이탈리아에 가고 싶은가보다. 내가 생각하는 카우치서핑은 그런것이다보니 시카고와 뉴욕에서의 카우치서핑은 조금 아쉬운게 있었다. 뭐 언젠가.
7.
얘에 대한 에피소드는 끝이 없다. 처음에는 뭐지? 당황이었다가 스트레스가 되었었는데 이쯤되니까 그냥 웃긴다. 파스타가 일인분 분량으로 남았다. 얘가 자기는 파스타를 멈출 수 없다면서 한숨을 쉬는거다. 먹으려나보다 생각했는데, 이미 여러번 먹어 민망했는지 나눠먹자는거다. 우리는 이미 배가 불러서 괜찮다고 했다. 그러니까 자기도 그냥 요거트와 바나나를 먹겠다는거다. 응 그래~ 디저트 정도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국그릇 한가득 거의 아침식사랑 동일한 양을 그래놀라 잔뜩 뿌려서 먹는거다. 얘 다이어트 걱정하는애 맞나… 그냥 파스타를 먹는게 나았을 거 같은데 생각하고 있었다. 나랑 다른 친구는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한 스푼 퍼서 먹고 있는데, 후라이팬에서 단내가 슬슬 난다. 얘가 팬케익을 굽고 있다. ㅋㅋㅋㅋㅋ 야 그냥 먹엌ㅋㅋㅋㅋㅋㅋㅋ